깨달은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천국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처음부터 나고 듦이 없는 세계를 꿈꿉니다.
비록 꿈으로 끝날망정
그 세계는 고요의 안쪽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에
번뇌의 불꽃인 마음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신도 하느님도
존재할 수 없는 곳
오로지 영성만 가득한 곳입니다.
빛이 되어라하면 빛이 됩니다.
어둠이 되어라하면 어둠이 됩니다.
모습을 보이지않으면서도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곳
끝도 처음도 없지만
인기척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곳
그렇지만 손을 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가까이 가면 사랑처럼 멀리 달아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느냐가 아닌
저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
자연이전의 세계
태초의 모습으로

생명은 죽음과 손을 잡고 끊임없이 순환을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먹고삽니다.
오늘이 지나면 어제가 되고 내일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이것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변화때문이기도 합니다.
변화를 멈추게 하는 것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상도 아닙니다.
오로지 빛을 넘어서고 어둠을 넘어선 고요의 안쪽에 도달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어쩌면 고요의 안쪽에서조차 변화는 달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걷어낸 마음이 도달한 곳이기에
그 순간만큼은 변화도 멈추어서 함께 춤을 출 것입니다.

더 이상 나아가고 싶어도 나아갈 수 없는
더 이상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깨달은 사람이 꿈꾸는 마지막 꿈
그의 세계는 티끌 이전의 모습입니다.
신도 하느님도 넘볼 수 없는
형체 이전의 세계입니다.

2002년 12월 4일 수요일
깨달은 사람이 생각하는 마지막 이상적인 세계를 생각하며...

청아당 엄 상 호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