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벗고 하나가 된 나무들
싸우지 말라고 한다.
나중에 돌아갈 곳은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신 때문에 싸우지 말라고 한다.
뜻도 모른 체 맨 처음 기도를 할 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신이 무엇인지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설프게 기도를 할 때마다 도움을 주다보니
단맛이 들어 이제는 툭하면 기도를 올리며 어려움을 부탁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영생을 꿈꾸며
믿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일로 착각을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믿을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영생불사를 시켜주겠다는 말을 믿었기에
남들이 흉을 보아도 그런 대로 참으며 오늘도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생각을 해보아라
우리가 생각하는 영생불사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영생불사가 실제로 우주 안에 존재하는지를
신도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신을 이용하여 돈을 벌 목적으로 자신의 영달을 이룰 목적으로 믿는다면
천벌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기도란 무엇인가
두손을 모으면 기도가 되지 않던가
그리고 그 대상을 찾게되는 것이 기도가 아닌가
자신에게 도움을 줄만한 대상
바로 그것이 신이 아닌가
반드시 신의 형상이 보이지않아도 좋고
혹여 보인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기도를 통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신을 찾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기도를 한다고 기도를 할 때마다 다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럴 때는 신도 피곤할 수 있기에 그러나보다하고
다음을 기약하지 않던가
만약에 연속해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서서히 실망을 할 것이다.
처음에는 신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신도 이제는 죽었나보다라고
그렇다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때이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때이다.
고통만 내려주는 신은 대접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신이 대접받으려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눈치껏 알아서 챙겨주어야한다. 그래야 신다운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사람들은 영악하다.
어떤 신이 자신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내려주는지
자신의 취향을 잘 알아주는지를 안다.
그리고 서로 다툰다.
자신의 신이 가장 많은 혜택을 내려준다고
한번 믿어만 보라는 것이다.
틀림없이 자신과 똑같은 혜택을 입게될 것이니까
많은 사람들은 갈등을 일으킨다.
유일신인 하느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신들 때문에 혼동이 온다고 한다.
도대체 이렇게 많은 신들을 다 모셔야하는지 아니면
하느님만 믿어도 되는 것인지를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예 무시해버리고 신은 없다고 해야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라고 한다.
동서양마다 신들의 모습이 다르고
우리가 마음만 먹는다면 없는 신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가 있지 않느냐고
그리고 아무렇게나 만든 신을 향해 기도만 올리면 신기하게도 기도를 들어주지 않더냐고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어떤 때는 하느님조차도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다 싶은 것을 하나만 전 세계인에게 심어놓았더라면 지금에 와서 이렇게 혼동이 오지 않았을 텐데
그동안 너무 방관만해오다보니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느님도 이제야 자탄을 한다고 한다.
인간을 만들어낼 때 좀더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는데 지금에 와서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까지 넘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냥 시키는 데로 얌전하게 선악이나 구분하면서 살아갈 줄 알았지
신이 어떻고 하느님이 어떻고 하면서 기어오를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다.
그동안에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이제부터라도 조용하게 명상이나 하며 살아가라고 한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신을 믿고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신을 믿지말라고 한다.
그놈의 신 때문에 제발 싸우지 말라고 한다.
신! 신! 신! 하는 바람에
하느님도 이제는 지쳤다고 한다.
두눈을 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데로 믿고 살아라한다.
어떤 신을 믿든 안 믿든 간섭을 하지않을테니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며 살아가라고 한다.
대신 자랑은 하지말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믿고 살아가라고 한다.
2002년 12월 8일 일요일
청량산 숲속 바위 쉼터에서 옷을 벗은 나무들이 하나가 되어 기도 드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종교에 대한 갈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과연 어떤 종교가 가장 진실되고 하느님이 원하는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오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꾸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기도를 올릴 때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못했다면 과연 종교의 힘이 살아있을 수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기도를 올릴 때마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신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신의 모습은 동서양을 통해 다 다르게 비춰져 왔다. 그리고 어떤 신이 자신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주는지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깊다. 물론 환경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되어져 그 나라에 맞는 종교로 치우쳐지는 면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주에는 어떠한 형태로 생각하든 모두 다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태양신을 믿든 월신을 믿든 아니면 유일신인 하느님을 믿든 우리의 생각대로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반드시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물론 하느님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생각해도 이루어진다고 볼 수가 있지만 하느님을 배제한 상태에서도 이 일이 일어나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논리로 풀리지않는다면 새로운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아니 초월해서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 짜 맞추어도 안성맞춤인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일까를...
이것은 이 우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줄기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형체를 지니지 않았지만 천변만화의 형태를 짓고 풀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그것은 형체도 냄새도 없지만 빛이 되어라하면 빛이 되고 어둠이 되어라하면 어둠이 되는 물질이면서도 비물질인 형체를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물론 하느님이 되어라 하면 하느님이 되고 신이 되어라 하면 신이 되기도 하는...
역사는 인간이 생각하는 데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생각해보아야한다. 신도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역사 아무리 신의 힘을 빌려 멈추려해도 멈추어지지 않는 앞만 보고 나아가는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할지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 과학이 발달하는지 그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간이 왜 과학을 그토록 신봉하는지를 철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과학이 불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면 신도 말렸을 것이다. 그냥 방관만 해두는 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아니면 신도 과학이 끝에 다다르면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않을까하는 조그마한 기대라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다.
청아당 엄 상 호 詩 |